언론보도: [치의신보] 대한민국 ‘치의학의 국제화’ 큰 별이 지다
글쓴이: 이엔이
작성일: 17-07-19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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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지헌택 고문 영결식 엄수
치과위생사 최초 배출 ‘산파’

“모든 치료에 정성이 깃들면 50년은 갈 수 있고, 이 세상의 생을 영위할 기념품을 환자에게 선사한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 한다면 환자의 생명뿐 아니라 치과의사로서의 생명도 연장할 수 있다.”

자기관리에 엄격하고, 환자와 타인에 한없이 너그러웠던 고인의 유지(遺志)는 이제 후배 치과의사들의 과제가 됐다. 지난 8일 대한치과의사협회 제15 · 16대 협회장을 지낸 지헌택 고문이 별세했다. 향년 95세. 치협은 협회장으로 장례를 진행하고, 11일 고 지헌택 고문의 영결식을 엄수했다.

장의위원장을 맡은 김철수 협회장은 “시간은 먼저 떠나지만 여기에 더 남아 그분과 석별의 정을 나누고 싶은 후배의 심정을 전한다”면서 “학자로서, 개원의로서 항상 치과계를 먼저 생각하고 솔선수범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중략) 무엇보다 고문님은 철저한 자기관리로 85세까지 현역으로 개원하신 ‘참 의료인’이셨다. ‘무엇이든 정성이 깃들면 쉽게 무너지지 않은 만큼 우리 치과인 모두가 전문성을 발휘해 화합한다면 어떤 직종도 따라올 수 없다’는 고문님의 충언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저희 모두는 당신께서 일군 업적을 계승 발전시켜 더 훌륭한 치과 의료계를 만들 것을 영전 앞에 약속드린다”고 조사를 낭독했다.

이어 여환호 국제치의학회(ICD)한국회 회장은 추도사를 통해 “역사적으로 그분의 학문과 의술은 치과계 첨단이었으며, 치과 의료봉사에 대해서는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전위적인 삶을 사셨다. 이제는 후진들에게 영원한 전범이 되어, 오는 세대 누구나 본받고 회고해야 할 고전이라는 영원한 명작의 삶으로 남았다”고 고인의 족적을 칭송했다<아래 추도사 전문>.

이날 영결식에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사위) 등 고인의 유족을 비롯해 김철수 협회장, 김정균, 안성모, 이수구 고문 등 치협 전현직 임원이 참석했으며, 문재인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조화를 보내 추모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 학자, 개원의, 공인으로 ‘치열한 삶’
고 지헌택 고문은 1923년 충남 서산 출생으로, 1947년 서울치대를 1회로 졸업했다. 1947년부터 1970년까지 세브란스의과대학?연세치대 교수를 역임하면서 학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1966년에는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내 치과위생사 양성기관을 설립, 최초로 4명의 치과위생사를 배출하면서 치과위생사 제도의 산파 역할을 했으며, 이듬해 67년에는 연세대에 치과대학을 설립해 ‘사학 치대’의 시대를 열었다.

1970년 교편을 놓고, 개업의로의 삶을 시작한 고인은 회무에 투신, 76년부터 78년까지 서울지부 회장을 지냈으며, 이어 82년까지 제14 · 15대 치협 회장을 역임하면서 의료보험 수가 현실화, 치과기자재 수급, 치과대학 증설, 한국 치과계의 국제적 위상 제고 등 한국 치과계가 발전할 수 있는 주춧돌을 놓았다. 이런 공적을 인정받아 72년 국민훈장 목련장, 84년 협회대상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고인은 배구에도 일가견이 있어 대한배구협회 창립멤버이면서 협회 총무, 전무, 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한국 배구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배구협회 특별공로상을 수상했다.

고인의 활동은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고 한국 치의학계의 국제적인 위상을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아시아태평양치과연맹 부회장, 회장을 역임했으며, FDI 상임이사를 지내면서 한국 치과계의 국제적인 교류에 앞장섰다.

또, 몽골치대에 최신 치의학 교육을 전파하는 등 몽골 치과계에 대한 헌신적인 봉사를 인정받아 외국인에게 주는 몽골 최고 훈장인 친선훈장을 2009년 몽골 대통령으로부터 수훈하기도 했다.

[추 도 사] 故 지헌택 박사님을 추모하며

지금 우리는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치과계의 거목이시자 받침대이셨던 지헌택 회장님의 영전 앞에 서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그분의 학문과 의술은 치과계 첨단이셨으며 치과 의료봉사에 대하여는 당시에는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전위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이제는 후진들에게 영원한 전범이 되시어, 오는 세대 누구나 본받고 회고하여야할 고전이라는 영원한 명작의 삶으로 남았습니다. 지 회장님은 말과 글로서가 아니라 몸으로 친히 실천하시는 삶을 사셨습니다. 오늘 지 회장님과 이별을 애통하는 우리 후진들은 존경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추도 인사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지 회장님께서는 특히 국제적인 봉사를 통한 치과계 발전과 문화창달을 위해 치과계 지도자들로 구성된 ICD 한국회를 1986년 11월에 창설하셨고 세계회장으로서도 뛰어난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대만, 몽골, 카자하스탄 등에 ICD를 설립하도록 외교적인 노력을 다하셔서 결실을 맺게도 하셨습니다. ICD 한국회는 1960년대 후반부터 활동을 시작되었으나 지 회장임의 가입과 활동으로 ICD 지회로서 1986년에 정식으로 설립되어, 1997년 9월에는 경주에서 ICD 세계대회를 치룰 수 있었습니다. 지 회장님의 따스한 손길 속에서 많은 인재들이 자랐습니다. 유양석, 최욱환, 정상주, 김규문, 김종열, 양유식, 정재영, 박인환, 이상필, 양웅, 이태수 등 많은 인재들을 한국 ICD에 남겼습니다. 특히 양웅 선생님은 지 회장님의 업적을 계승하는 세계회장이 되어 그 정신이 끊어지지 않도록 후진들의 성장을 위한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지 회장님은 모든 ICD 모임 시간을 정확히 지키시고, 후배들을 위해 하실 말씀도 철저히 준비해오셨습니다. ICD 모임에 빠지시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후배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주시고 의견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제 그 말씀들 모두 우리를 향한 유훈으로 남았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건강상의 문제로 ICD 모임에 빠지시는 일 많아졌을 때, 저희들은 지 회장님의 건강을 위해 함께 간절한 기도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몽골 치과계에서는 어디서나 어느 분이나 지 회장님을 Our Godfather라고 소개합니다. 그만큼 한국뿐만 아니라 몽골을 비롯해 세계적인 치의학교류에 애쓰셨습니다. 이제 그분은 그리움과 함께 치과계에서도 많은 분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남아 계실 것입니다.

평생을 치과계를 위해 노력하신 지 회장님을 칭송하고 싶어도, 적합한 표현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날수록 역사는 그 위대함을 더욱더 빛나는 어른으로 평가할 것입니다. 지 회장님의 몸은 가셨지만 그 정신은 영원히 후진들 마음속에 살아남을 것을 믿으며, 후배로서 그 길을 따르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지 회장님을 기리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면서 추도사에 갈음하고자 합니다. 

ICD 한국회 회장 여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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